나의 헤아림 너머(261011)

2026. 10. 17. 11:17·주일말씀나눔

함께 읽은 말씀
출애굽기 32:1-14 / 마태복음 22:1-14 / 빌립보서 4:1-9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마태복음 21장과 22장에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세 가지 비유는 예수님과 세례요한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스라엘에게 던지는 예수님의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세 가지 비유는 동일하게 하나님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옵션에 대해서 말합니다(세리와 창녀/ 열매 맺는 다른 민족/ 대신 혼인잔치에 초대된 이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들의 위치가 확고하다고 여기며 자신들의 의견에서 벗어난 예수님과 세례요한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따르며 예언자로 여기고 있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지위가 확고하지 않음을 경고하십니다. 초청을 거절한 그들 대신 길거리에서 데려온 이들이 그 잔치를 가득 채웁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들의 헤아림을 넘어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 아닙니다. 그들이 처음 하나님의 백성이 되던 시내산에서도 이스라엘의 죄에 분노하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새로운 백성을 만들 수 있음을 언급하십니다(출32:10).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사실 그들은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려고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을 섬기려 했습니다(출32:4). 모세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그들의 불안감을 달래보고자 자기들 나름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그 일을 한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거룩하고 멋진 존재로 만든 것이 금송아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들의 헤아림으로 만들어낸 금송아지는 결코 하나님의 본질을 담아내지 못하는 우상일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헤아림 안에 가둘 때 우리는 그분의 본질, 그분의 뜻의 올바른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빌립보서에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인이 나옵니다. 바울의 서신을 통해서 볼 때 그들은 빌립보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두 여인 중 한명이 빌립보교회의 창립멤버인 루디아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루디아’는 실제 이름이 아니라 지역이름으로 보기 때문에 그럴만도 합니다. 그만큼 두 여인이 빌립보교회에 큰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각자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할 일들을 했을테지만 그 열매가 교회에 아름답게 나타나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런 이들을 향해서 바울은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바울이 빌립보서 2장에서 ‘이 마음을 품으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말할 때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기를 낮추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이 개념이 말하려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 분이면서 한 분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 분 하나님이 하나로 계시는 그 ‘관계 자체’가 하나님의 본질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말로 이해할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끊임없이 형제 사랑을 이야기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관계하는 그가 나의 헤아림 너머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틀에 갇히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하나님의 도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집교회에서 끊임없이 공동체 설교를 지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목회자 한 사람의 헤아림 속에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서로를 자신의 헤아림에서 건져줄 하나님의 도움으로서 모든 성도가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빌립보서 본문의 마지막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해야 할 가치가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무엇이든지’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또 다른 무언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아는 거룩이란 틀에만 머물지 말고 무엇이든지 거룩한 것이라고 하면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옳은 것이라고 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영 아니어도 한번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이라고 하면 그것을 잔치 밖으로 내어쫓지 말고 초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의 헤아림 너머에서 다가오는 소리를 향해 귀를 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이 아니라 그 뜻에 따라 변화할 유연성입니다.

 

물론 그것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마태복음에서 혼인 잔치에 모두가 제한 없이 초청을 받았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이들은 결국 쫓겨났습니다. 잔치에 모든 사람을 초청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 혼인 잔치를 무료급식소로 만들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잔치가 악한 사람들을 향해서도 열려 있듯이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헤아림 너머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오는 불안감을 기도와 간구로 그리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내가 확신했던 생각이 다른 사람을 통해 바뀐 경험이 있나요?



Q2.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이나 생각 가운데서도 내가 귀 기울여 볼 부분은 무엇일까요?


Q3.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할 때, 지금 내가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나눈 찬양

Indescribable(Chris Tomlin)

https://www.youtube.com/watch?v=5IlVfkY5q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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