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 하나님(261018)

2026. 10. 24. 17:34·주일말씀나눔

함께 읽은 말씀
이사야 45:1-7 / 마태복음 22:15-22 / 데살로니가전서 1:1-10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구약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귀환을 지시한 고레스왕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이 고레스 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이 말하고 있는 고레스 왕의 시대는 정말 그렇게 구원의 시대였을까요?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조국이 없어졌고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끌려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발붙이고 살려고 했던 바벨론마저 페르시아에 멸망하면서 등장한 왕이 바로 고레스입니다. 지금 이 예언이 선포되는 이스라엘의 현실은 이처럼 혼란스럽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유독 ‘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여러차례 강조하시지요.

 

이런 고백이 우리에겐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분이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말씀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면서 어둠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재앙도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흔히 말하는 ‘신정론’의 문제를 가져옵니다. ‘어떻게 선하신 하나님이 어둠/재앙도 만들고 주관하실 수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악을 설명해 줄 다른 존재가 있다면 쉽게 설명되겠지요. 우리가 흔히 아는 ‘사탄’이라던가 악한 신을 반대편에 세우면 선한 신은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불편함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에도 자신이 모든 것의 주관자임을 명확히 하시지요. 그렇기에 이사야의 말씀은 눈에 보이는 정복자가 아니라 그 너머를 보도록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그에게 난처한 질문을 합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답을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미움을 살 것이고 바치지 말라고 답하면 위험인물로 로마 정부의 타겟이 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동전을 보여주며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것’이란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존재, 바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함정의 요소를 빠져나가면서도 듣는 이들 자신이 하나님의 것임을 깨우쳐 주시는 놀라운 답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종착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동전에 새겨진 황제 역시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단순히 세금을 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이 세상의 주관자가 세금을 받는 황제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의 지배 뒤에도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고레스 때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압제당하는 그 현실 너머에 하나님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다른 교회들에게 모범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향한 바울의 서신에는 기쁨과 감사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쁨과 감사는 데살로니가교회가 당했던 ‘많은 환난’을 전제하고 있습니다(살전1:6). 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지켜가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분명 그들의 현실과는 일치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에게 닥친 환난 앞에 절망하기보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바라봤다고 바울은 말합니다(살전1:9). 왜냐하면 바울이 그들에게 전해준 십자가의 복음이 바로 이 고통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분명 고통과 죽음의 사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 그분의 적극적 행동이었다고 말해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 살아갑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현실을 떠나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현실이라는 큰 벽 앞에서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불의한 현실 앞에 실패하기도 하고 때론 내 신념을 포기하며 타협하기도 하지요. 내가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 서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한 하나님과는 멀어보이는 오늘의 현실 앞에서, 나를 무너뜨리고 절망하게 하는 세상 앞에서 그 모든 것 너머에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믿을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고통이 사랑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십자가의 복음 외에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그분은 고통 가운데 계시고 그 아픔과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하나님이 어둠과 재앙까지 주관하신다는 말씀은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나요?



Q2.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왜 환난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Q3. 고통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모든 상황 속에서(마커스워십)

https://www.youtube.com/watch?v=Ipa_vptcy7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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