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우리의 적들을 초대하고 먹이는 꿈꾸며

2025. 5. 26. 23:33·성도들의 이야기

 

만약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면, 한 알의 약으로 식사를 대신할 수 있다면. 그러면 정말 좋기만 할까. <흑백요리사>와 수많은 유튜브 먹방과 쿡방에 여전히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생각보다 먹는 즐거움이 꽤 크단 뜻이고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먹는 즐거움을 그다지 잘 몰랐던 나였지만 그걸 크게 실감하게 된 경험이 있다. 체질 개선을 이유로 일주일 동안 절식을 했는데 그때 나는 먹방에 눈을 떴다. 다른 사람이 먹는 것만 봐도 위안이 됐다. 코로나 시기에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달고나 커피를 만들며 무료함을 달랬던 것도 같은 이유라 생각한다. 이처럼 먹고 마시는 행위는 안정과 행복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나는 함께 먹는 즐거움을 교회에서 배웠다. 부모님은 30대부터 성경을 공부하고 교제를 나누는 모임을 갖고 계신다. 다섯 가정이 모이기 시작해서 ‘독수리 오형제’라는 별칭이 붙었다.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모이실 정도라 이제는 거의 가까운 친지와 다름없다. 부모님들을 따라 2세인 우리 자녀들도 자연스레 어울리며 함께 놀며 각종 놀이와 모험을 함께 했다. 언젠가 한 번은 어느 개척교회 건축 현장에 따라갔다. 어린 우리들도 고사리 손으로 벽돌을 날랐다. 지금 생각하면 꽤 위험했던 것 같은데 그땐 실제로 블록 놀이를 하는 듯 재미있었다. 한참 일하고 나선 부모님들이 챙겨 온 버너와 코펠을 꺼내 라면을 끓였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으며 조리하느라 애를 먹었다. 제대로 익었는지 알 수 없이 대충 종이컵에 덜어 라면을 먹었는데 꿀맛이었다. 우당탕 만찬이었지만 정말 재밌는 식사였다. 

 

함께 먹는 일의 감사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 건 유학 생활 때문이었다. 그때는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이 참 수고로웠다. 그렇다고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어 샐러드채소 한 봉지를 사서 대충 밥에 비벼 먹거나 감자칩 한 봉지를 아보카도를 섞은 플레인 요거트에 찍어 먹으며 해치워 버리기도 했다. 사정이 빤하다 생각하신 현지 교회 성도님들은 자주 유학생들을 식사 자리에 불러주셨다. 특히 할머니들은 떡 벌어지게 한 상을 차려놓고 극진한 손맛으로 먹여주셨다. 이렇게 누가 집에 식사 초대를 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내가 함께 먹는 자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결혼하고 우리 집이 그 자리가 됐다. 우리는 거의 매일 먹을거리를 준비하여 만들고 먹고 치우면서 함께 먹는 일에 점차 익숙해졌다. 남편의 경우, 혼자 오래 살다 보니 수고로움 때문에 먹는 것에 크게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는 함께 먹는 즐거움을 배우게 됐다고 했다. 이 즐거움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우리는 자주 식탁 교제의 자리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많은 친구들, 청년들, 믿음의 동역자들이 우리 집을 찾아주었고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를 나누었다. 교회에서 오래 일을 했던 남편이지만 이렇게 가정을 이루기 전까지는 누군가를 집에 초대해 본 적이 없었다며 이런 자리를 갖게 되어 참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식탁보다 우리 집에서 풍성한 식탁은 단연 성찬시간이었다. 결혼 후 우리는 매주 월요일마다 가정예배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신앙 배경에 적응해야 하는 나에 대한 남편의 배려이자 새로 시작하는 우리 가정에게 필요한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둘이 나란히 앉아 첫 성찬상을 대할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신혼 초 6개월을 남편이 사역하던 교회의 사택에서 보냈는데 아직 수도권에 이런 곳이 남아있나 싶던 정말 무인도 같은 곳이었다. 인도도 없는 시골 한복판이었기에 깊은 밤에도 피아노를 치며 큰 소리로 찬양할 수 있었다. 성서일과에 따라 본문을 함께 읽고 주님이 주신 교훈과 묵상을 나눴다. 말씀을 통해 성찬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상 앞에서 함께 누리는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시간들이 그렇게 겹겹이 쌓여나갔다. 

 

그러다 오랫동안 남편이 고민하던 개척이 드디어 지난해 결정되었다. 그동안 바람이기만 했던 교회로 모이는 일이 드디어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그 결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의 가정예배였다. 이것을 발전시킨 형태로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진, 갖기를 원하는 이들과 함께 교회로 모이고 싶은 마음이 결정의 동력이 되었다. 남편은 부교역자 생활을 내려놓고 여느 성도들처럼 생활인의 삶에 뛰어들기로 했다. 어찌 보면 이제야 그는 성도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사역자가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역을 내려놓고 우리는 다시 수도권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택이 아닌 진짜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주일마다 교회로 모이기 시작했다. 주일마다 둘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월요일마다 드리던 가정예배와는 조금 달랐다. 마치 이제 막 선교지에 떨어져 모이기를 시작한 부부 같달까. 이것저것 상을 차리고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손님을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복음서의 잔치 비유에서의 주인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여전히 감동적이고 기뻤지만 나사가 하나 빠진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우리와 함께 모일 누군가를 보내주시기를 기도하게 됐다. 

 

그러다 어느 한 가정이 우리와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싶다 전해왔다. 남편의 지인이던 결혼 1년 차의 한 부부가 결혼 과정 중 출석하던 교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다시 안정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갈 교회를 찾는 중이었던 것이다. 수도권으로 우리가 이사 오게 되면서 연락이 닿았고 그런 사정을 접하게 됐다. 그들과 몇 번의 예배를 함께 드렸고 교제를 나눈 끝에 우리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기에 우리는 그들을 돕고 싶었다. 나는 함께 먹고 마시며 나누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처럼 일은 흘러가지 않았다. 3개월이 채 못 되어 우리는 다시 둘만의 성찬을 마주하게 되었다. 함께하기로 했던 것도, 그러지 않기로 한 것도 모두 그들의 선택이었고 그걸 존중했지만 우리는, 나는 그게 참 쓰렸다. 이유도 모른 채 신청한 비자를 거절당한 느낌 같았다. 한편으론 노쇼 손님을 받은 식당 점주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쉽단 말인가. 그리고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돌아섬의 순간을 맞닥뜨려야 하는 걸까. 그러다 첫 성찬의 자리인 마가의 다락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따라 모이는 성찬의 자리. 사실 그건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신 자리였다. 거기엔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도 있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먼저 떡을 권하셨고 심지어 네가 하려는 일을 하라 허락까지 하셨다. 어디 그뿐인가. 그로 인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처음 하신 일은 그를 알지 못한다 저주하고 부인한 베드로의 아침상을 차려주신 것이었다. 예수님이 차려두신 상은 그저 즐거운 잔치상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각종 인간 군상들(사실 나도 그중 하나고)과 주님이 감당하신 괴로움의 시간이 왁자지껄한 모습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난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천국 잔치의 호스트도 그럴진대 우리는 오죽하랴.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지난 주일에도 우리는 둘이 성찬 예배를 드렸다. 여전히 우리의 상에는 많은 자리가 비어있다. 우리는 지금도 함께 먹고 마실 게스트의 입장을 기다린다. 동시에 나누는 기쁨 저 너머에 있는 십자가의 그늘에 대해 묵상하는 성찬을 배우는 중이다. 이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우리와 한 마음으로 함께 모일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함께 밥을 먹고 즐거움을 나누는, 진정한 “식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우리는, 나는 이 자리로 초대될 그 한 사람을 만나기를 꿈꾼다.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이 글은 우리집교회 성도인 사라리님의 '그의 길 위에' 시리즈 중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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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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