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란 누구인가?

2026. 5. 31. 21:57·성도들의 이야기

 

목사란 누구일까요? 어쩌면 교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어보이는 이 질문에 대해서 지금 저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평일에 생업을 위해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목사’로 안수받은 저의 쓸모와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다보면 그렇게 생각만큼 쉬운 질문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과연 목사란 누구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목사’라는 명칭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 등장하는 헬라어 ‘포이멘’의 번역어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목사’보다는 ‘목자’로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은 장로나 집사와 같은 직책이라기보다는 교회를 섬기는 봉사의 형태로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예수전도단에서 선배와 후배를 1:1 매칭시켜서 ‘양’과 ‘목자’라고 불렀습니다. 후배를 이끌어주는 멘토 같은 역할의 선배를 ‘목자’라고 부른 것이지요. 성경에 기록된 목자는 이 역할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이 역할이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지금의 목사의 역할과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목사’가 적어도 ‘목자’라는 용어와 구분되는 다른 ‘직책’의 명칭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사에 대해서 생각할 때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목사를 제사장처럼 구분된 존재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제사장의 역할은 개인에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바울이 자신에 대해서 말할 때 제사장의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경우는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방인 사역의 사명에 대한 비유적인 고백이지 자신이 제도적으로 제사장의 직책을 가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히브리서는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제사장이심을 거듭해서 말하고 있습니다.(히6:20, 7:16, 8:1) 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제사장으로 지칭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벧전 2:5, 9, 계1:6) 

 

목사를 레위인처럼 성전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목회자가 레위인처럼 자신의 소유 없이 교회의 도움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언뜻 지금의 목사제도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신약시대에는 구약시대와 같은 성전이 없습니다.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교회 공동체를 성전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직업적 종교인이라는 제도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목사만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돈 받지 않고도 열심히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고 있습니다. 과연 목사만 레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목사의 정체성을 레위인으로 본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성도들의 봉사나 섬김을 금지시키고 목사만이 모든 일을 맡아서 해야 할 것입니다.

 

목사는 사도와도 구분됩니다. 우리는 ‘사도’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의미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열두 제자’와 ‘모든 사도’를 구분하고 있습니다.(고전15:5,7) 즉, 열두 제자보다 큰 개념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 디도도 빌립보교회의 ‘사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빌2:25). 즉, 사도란 목사보다는 목적을 가지고 보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지역에 속한 성직자는 아니었습니다. ‘보냄을 받았다’는 이름의 의미처럼 그들은 지역을 순회하는 순회 사역자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날 이 역시 목사만을 위한, 구분된 역할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종교개혁자들은 목사라는 직분을 ‘설교를 맡은 장로’로서 정의했습니다. 즉, 그는 다른 장로들처럼 똑같은 성도로서 교회를 섬기는 직분을 받은 자, 역할을 위임받은 자로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카톨릭이 가진 직제 중심의 교회론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전문 종교인을 특별한 계층이나 신분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는 정의입니다. 이것이 당시 카톨릭의 신부와 개신교의 목사를 구분하는 지점이 된 것입니다. 

 

흔히 신학을 하고 목회자의 길을 가는 이들이 ‘부르심을 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르심이 다른 성도들의 부르심과 구별되는 특별한 부르심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을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다(롬1:1)’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일하게 교회를 향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롬1:6)’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의 부르심과 교회의 부르심이 다름이 없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직장을 향해, 교회를 섬기는 직분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과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는 것 사이에는 어떤 특별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표인 소망을 향해 동일하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엡4:4).

 

그렇다면 목사는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동일한 평신도인가? 아닙니다. 흔히 평신도교회라고 불리는 교회들은 모든 성도가 평등하다는 생각에 목사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에게 주신 큰 선물을 내동댕이 치는 것입니다. 만약에 작은 개척교회에 피아노 전공자가 다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럼 교회에서 반주는 아마도 그 분이 하게 될 겁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의 전문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회계학을 전공하신 분이 있고 그분이 교회에서 재정 관련된 부분을 맡아서 봉사한다면 그것은 그 공동체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목사는 교회를 위해 신학과 목양 분야에 훈련된 전문가입니다. 교회는 그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게 교회의 일부 기능을 위임하게 되고 이것이 교회에서 목사의 역할입니다. 때론 그 일을 위해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을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학위가 있다고 그것이 그의 실력을 보장해주지는 않겠으나 교회를 위해서 그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존중은 필요합니다. 

 

평신도교회는 평등에 대해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자칫 목회자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경향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물론 피아노 전공하지 않아도 교회 반주 정도 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회계학 전공하지 않아도 교회 헌금 정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교회에서 신학전공자는 필수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공자가 없어도 되는 것과 전공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신학은 결코 성경공부 정도로 무시될 수 있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 전공자가 필요없다는 생각은 자칫 교회의 신학적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킬 위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신학적 전문성이 교회의 권력으로 왜곡될 것에 대한 걱정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전문성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른 전공자들도 그들의 전문성과는 별개로 그들의 성품으로 인해 교회의 어려움이 되기도 합니다. 목사를 특별히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가진 전문성을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첫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목사란 누구인가? 목사는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유별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는 일을 위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똑같은 성도입니다. 그 직분을 목사라고 부르든 목자라고 부르든 장로라고 부르든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그 성도의 전문적 봉사에 감사하되 그를 동일한 형제로서 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목사’이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로 부르심 받았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과 다를 바 없이 생업을 위해 땀을 흘리면서 오늘의 삶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가 훈련받은 목회자로서의 전문성을 당신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사용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그 일에 부끄럽지 않으려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에베소서 4:11–12)

 

 


 

이 글은 우리집교회에서 목사의 역할로 봉사중인 신승호 형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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