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누가복음 21장의 예언은 마지막 때에 대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20절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포위 당하는 것을 보거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분명히 70년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사건을 가리킵니다. 즉, 이어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징조들은 바로 이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70년의 사건만을 말씀하신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올 것(27절)’이라는 예언은 분명 종말론적 사건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서 예언자는 중첩된 산을 보는 사람과 같다고 합니다. 마치 가까운 산과 먼 산이 중첩되어 같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본다는 말입니다. 즉, 이 예언 속에서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가까운 산과 [구름타고 오심]이라는 먼산이 하나의 그림처럼 중첩되어 펼쳐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수많은 징조들을 볼 때 하나님 나라가 ‘왔다’가 아니라 ‘가까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언 속에서 이 두가지 사건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예언은 그것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이 말씀은 첫번째 사건을 경험하거나 경험할 이들에게 두번째 사건을 기다리며 소망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경험하는 사건들을 통해서 다가올 날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것을 ‘징조’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일어난 사건을 본 사람은 그 사건을 통해서 다가올 날을 기대하고 소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많은 일들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징조로써 볼 수 있는 사람은 마지막 날을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무화과 나무에 잎이 돋는 것을 보고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아는 사람은 여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소망하지 않는 이들에게 매일같이 스쳐가는 일상은 그저 이벤트일 뿐입니다. 언제 여름이 왔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여름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이겠죠. 우리는 오늘의 삶 속에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고 그것을 소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바라보며 그 날을 소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소망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오늘의 삶에서 기다림의 이유들을 찾아내고 징조들을 발견하며 끊임없이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랬듯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소망의 징조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거친 광야의 길을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시냇물이 되어 주어야 하겠습니다.(시110:7) 그 물을 만나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다시 머리를 들어 승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또 그런 이들을 만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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