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은 말씀
예레미야 50장 17-20절
누가복음 12장 29-32절
요한계시록 5장 1-10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삽니다. 하지만 그 안에 살다보면 어느 순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중직을 하겠다고 생각한 이후 실제 교회 일보다 회사에서 일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되면서 이런 고민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라는 정체성 이전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에 맞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신앙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세상속에 삼켜진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와 살던 이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요?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사자에게 쫓겨 흩어진 양’으로 비유합니다. 앗수르가 양을 잡아먹고 바벨론은 뼈까지 삼켰다(새번역)는 표현은 정말이지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다는 말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은 희미해지고 더 이상 소망도 없이 그렇게 다른 이방인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실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의 상황 속에서 그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아니 ‘남도록 하셨다’(20절)고 말씀하십니다. 완전히 삼켜진 것 같은 순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남아 있도록’ 명령하셨고, 회복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같은 양들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도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32절에서 적은 무리를 향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무리’로 번역된 단어는 원래 ‘양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양떼는 ‘그의 나라’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추구하는 이방인들과 구별됩니다. 우리의 존재가 세상에 묻혀 사라져버린 것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양떼로서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자에 쫓겨 흩어진 양처럼 염려하는 것이 당연해보이는 세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는 것은 단순히 필요를 채운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가 하나님의 돌봄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에게 속한 그의 양떼로서 남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양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역사적인 드라마의 시작점에서 일곱 봉인을 떼는 자격을 갖춘 존재에 대해 말합니다. 이런 종말론적 이미지로 분명 사람들은 ‘유다의 사자(5절)’ 같은 이미지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고대하던 사자의 이미지는 곧 연약한 ‘어린 양(6절)’의 이미지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양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그 이미지가 너무 익숙하지만 생각해보면 세상의 운명을 결정짓는 존재를 죽임당하는 어린양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조합이 아닙니다. 이런 부자연스러움에도 그가 어린 양인 이유는 우리가 양떼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은 그가 피를 값으로 우리를 ‘샀다’고 말합니다.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신 그분이 당신의 양떼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기 위해(10절) 값으로 치뤄지는 양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거대한 세상 속에 먼지같은 존재처럼 살아갑니다. ‘내가 누구인지’ 깊이 생각하는 것이 사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떼에게 ‘염려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자신의 양떼를 돌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그분은 스스로 그 양이 되시고 자신이라는 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 속에 있지만 이미 값이 지불된, 하나님의 양떼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필요를 알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채우시는, 돌봄받는 양떼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염려하지 말라’는 그분의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위로와 사랑의 말씀이 됩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거대한 세상 속에서 내 정체성을 잊어버린 것 같은 시간이 있었나요?
Q2.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Q3. 예수가 나를 피로 사셨다는 말씀은 나에게 어떤 은혜를 주는지 나눠봅시다.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듣는 찬양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 브라운 워십
https://www.youtube.com/watch?v=81hD_iGT6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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