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은 말씀
사도행전 2장 22-32절 / 요한복음 20장 19-29절 / 베드로전서 1장 3-9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들은 공통적으로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알려주신 생명의 길로 인해서 그 안에 기쁨이 가득하다고 말하고(행2:28)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기뻐합니다(요20:20). 베드로는 자신의 편지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합니다.(벧전1:6) 부활의 소식은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 이런 기쁨들은 잘 체감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그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본문들이 공통적으로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시련'과 '고난'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다윗의 시편인 시편 16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윗이 바라본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그런데 시편 16편은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를 지켜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그의 시편은 그가 하나님께 피할 수 밖에 없는 고난의 상황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 가운데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통해 생명의 길을 발견하고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의 기쁨은 그가 처한 고난의 상황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도마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 이야기를 도마의 불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도마의 불신에 대한 책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 보지 않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손과 옆구리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요20:20) 도마는 제자들과 다른 무언가를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도 다른 제자들이 보았던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에게 보고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되다고 선포된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이어지는 31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복음서의 독자인 성도들입니다. 도마와 제자들은 보고 믿을 수 있었지만 이 복음서를 읽게 될 성도들이 해 나갈 믿음의 싸움은 더 복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요한복음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는' 성도들의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벧전1:8) 중요한 것은 여기서 '보지 못한다'는 표현이 처음에는 과거형으로 쓰이고 그 다음으로는 현재형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보지 못함'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사건으로서 '목격'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재 그들의 삶에서 '경험되지 않는' 상태, 즉 그들이 당하고 있는 '시련'을 의미합니다.(벧전1:6) 베드로가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대상은 지금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상황,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오늘 평안하게 삶을 살며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만 같은, 그를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살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말씀은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시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왜 기쁨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 시련을 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별 문제 없이 잘 사는 것처럼, 내 능력으로 어찌어찌 수습할 수 있는 것처럼 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에는 기쁨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우리의 인생을 그저 그렇게 현상유지 정도 시켜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은 다윗처럼 하나님께 의지하고 피할 수 밖에 없는 고통의 상황 속에 있는 인생들에게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그가 주 안에서 발견한 '생명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그의 편지에서 성도들이 '믿음의 목표'인 구원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직 내게 주어지지 않은 그 유산을 지금 받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지 못함' 가운데 찾아오는 '봄'입니다. '만질 수 없는' 가운데 찾아오는 '만져짐'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내게 보여지는 현실 너머를 '내다보게' 합니다. 아니, 내다보는 것을 넘어 그것을 지금 이 자리로 가져와 선취합니다. 아직 내게 주어지지 않은 그 유산을 지금 받고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없는 것이지만 내 것이 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됩니다. 그렇기에 '보지 못하고 믿는' 우리들에게, 삶의 무게를 피하는 이가 아니라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내는 자에게, 내가 감당할 수 없어 하나님께 피하는 자에게, 가슴아파함과 무너진 가슴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이들에게 그 기쁨은 시간을 뛰어 넘어 찾아옵니다. 그렇게 '보지 못하면서도'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 그 기쁨이 찾아오길 간절히 구합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지금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보지 못함(시련)'은 무엇인가요?
Q2. 다윗처럼 간절히 하나님께 피했던 경험과 그때 발견한 '생명의 길'을 나눠주세요.
Q3. 참된 기쁨을 위해 이번 한 주 내가 감내하며 지켜야 할 '믿음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주는 완전합니다(마커스)
https://www.youtube.com/watch?v=NM0L5Bx3g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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