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은 말씀
이사야 50장 4-9절 / 마태복음 21장 1-11절 / 빌립보서 2장 5-11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이사야 말씀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종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고난 속에서도 어떻게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는 모욕을 당해도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모욕을 당하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지 않나요? 조금만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들어도 발작버튼이 눌려서 화르르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자신을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고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깁니다. 침을 뱉고 모욕하는 이들 앞에서도 물러나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고난당하시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종과 예수 그리스도, 고난 앞에 선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이사야 말씀은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가 '학자'처럼 말하고 '학자'처럼 듣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학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리무드)는 '많이 아는 사람' 같은 의미가 아니라 '배우는 사람', '제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종은 자신의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가르치시는 분, 자신의 스승의 것을 말하는 입과 그의 음성을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능력을 드러내려 하기보다 자신을 낮춰 하나님만 빛나시게, 그분의 말씀만 드러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복음서에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입성 장면은 모든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유독 마태복음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특성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서와 누가복음서는 나귀를 데려오는 과정을 예언하는 예수님의 말이 그대로 되었더라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만 그 구절을 삭제하고 있습니다. 대신 마태복음은 스가랴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이런 행동이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마21:4-5)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님이 미래를 예언하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그려진다면 마태복음서의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강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 오직 마태복음만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에서 두 마리의 나귀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는 새끼 나귀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마태복음은 제자들이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를 끌고 왔다고 쓰고 있습니다.(마21:7) 이것은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주로 읽었던 구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역에서 나귀와 나귀새끼를 동격 접속사로 묶고 있는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굳이 불필요해 보이고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마태는 예수님께서 예언자들의 예언을 그대로 성취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마태의 견해가 아니라 마태가 경험한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나귀 새끼를 타고 고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됨을, 그가 신실하심을 자신의 삶을 통해 보이기 위해서 말입니다.
성인 남자가 나귀도 아니고 나귀 새끼를 탄다는 것은 임금으로 예언된 자의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임금이라면 높은 말 위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것이 그의 위엄에 어울리겠지요. 하지만 나귀 새끼를 타면 그냥 서서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눈높이로 사람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 모습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사람들이 다가올 수 있을만큼 그들 가까이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성품을 두고 바울은 그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자기를 낮추셔서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만의 성품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창조때부터 자신을 비워 우리들을 위한 자리를 만드셨습니다. 완전하셔서 다른 무엇도 필요없는 그분 안에 우리의 자리를 비워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낮추심으로 그런 하나님의 본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낮아지심, 자기 비우심은 훌륭한 성품이나 예수라는 분의 고고한 인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 우리를 위해서 언제나 불안한 상태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사랑, 하나님이심에도 모욕 당하고 고난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기를 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분의 성품을 드러내시는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 자기 비움이 마음을 공(空)으로 만드는 일종의 정신수양이나 성격 교정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은 그가 빛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언제나 자기를 비우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닮아야 하는 것은 그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아닌 하나님만 드러나시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분만 드러나시길 바라며 그분을 등에 업었던 행복한 나귀처럼, 나를 비워내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우리의 한 주간이 되길 바랍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많이 아는 자’가 아닌 ‘배우는 자’로서, 오늘 내가 가장 먼저 귀 기울여야 할 말씀은 무엇인가요?
Q2. 나의 겸손은 내 인격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인가요, 아니면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을 드러내기 위한 통로인가요?
Q3. 내 욕심을 비워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이번 주간 내가 구체적으로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행복한 나귀(꿈이있는자유)
https://www.youtube.com/watch?v=PTiiWkHr7ks&list=RDPTiiWkHr7ks&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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