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은 말씀
창세기 12:1-4a / 요한복음 3:1-17 / 로마서 4:1-5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요한복음 3장 16절을 그 한 문장으로 꼽는 것에 이의가 있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끼칠만큼 진리의 핵심을 담고 있는 문장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이 말씀에서 자주 잊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들은 우리로 하여금 바로 이 지점을 바라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장이 재미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축복과 저주에 대해서 생각할 때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방식은 민수기 22장 6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수기에서 모압왕 발락은 발람을 데려오면서 그에게 '그대가 복을 비는 이는 복을 받고, 그대가 저주하는 이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복의 근원이라는 말에 더 어울리는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축복의 방향을 뒤집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가 복을 받고, 너를 저주하는(업신여지는) 자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에게는 축복하는 권한이 없습니다. 축복과 저주의 대상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존재이지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창대하게 하시는 이유 역시 많은 이들이 아브라함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복을 받거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너를 축복하는 자'와 '너를 저주하는 자'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자신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사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뱀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만들었는지 같은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병든 사람들이 보라고 높이 매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를 바라봐야 할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 전 회사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런데 왜 내 삶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담겨 있는 '세상'이라는 표현을 자주 '나'로 치환해서 읽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은 분명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여기에서 멈춰 서고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넘어 '세상'을 향해 있다고 말씀이 분명히 증거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나'를 향한 말씀으로 읽는 것에서 멈춰설 때 우리는 이런 유혹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거나, 사랑이 없어서 또는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내 삶에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가 알지 못하는 땅으로 보내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편안하게 인도할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를 향한 사랑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가 잘못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복받게 하기 위해서,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기 위해서 알지 못하는 삶으로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아브라함을 넘어 세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이 바라봐야 할 존재들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어딘지 모를 곳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의 순간들로 몰아가곤 하십니다. 이것은 고난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이고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도록 높이 드시는 현장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성령으로 난 사람의 삶이라고 말합니다(요3:8). 아브라함도,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길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음이란 결국 우리는 우리 삶에 닥쳐오는 고난 앞에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삶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세상과 관심으로 그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양 중에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거기서 많은 사람은 얕은 물가에서 맘이 조려서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 바다를 마음껏 저어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노 저어가는 그 바다가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음껏 저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세상이 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 보여지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바라보고 그 삶을 축복하는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갈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언덕을 떠나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요3:3)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아브라함이 어딘지 모를 지시할 땅으로 가게 된 것은 고난일까요, 사명일까요?
Q2.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무엇인가요?
Q3. 내 삶이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갈 때,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나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세상 사랑하사(God So Loved)
https://www.youtube.com/watch?v=IYgSaRYeN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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