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은 말씀
사무엘상 16장 1-13절 / 요한복음 9장 1-7절 / 에베소서 5장 8-14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사무엘상에는 하나님께서 어린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으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새의 집을 찾은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사무엘이 보기에 키도 크고 준수해보였던 아들들은 모두 탈락하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는 막내아들 다윗을 선택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에 대해서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외모를 보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뽑힌 사람은 외모가 준수한 소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입으로 두 말을 하신 걸까요? 아니요. 하나님은 겉모습만 보지 말라고 하셨지 못생긴 사람을 뽑을 거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이 하나님 뜻에 합한 그 사람의 외모가 준수할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한 눈먼 사람이 길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누구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부모의 죄 때문인지, 그 사람의 죄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죄 때문인지를 묻는 물음에 예수님은 그들의 예상을 벗어난 대답을 하십니다.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병은 죄 때문'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세상이 병자들을 바라보는 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을 거부하십니다. 병이 죄 때문이라는 시선 자체에 반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에 거부하고 더 높은 가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자신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판단하라고 강요합니다. 좌파냐 우파냐, 찬성이냐 반대냐, 부자냐 가난하냐, 하지만 성경에는 세상이 강요하는 기준보다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하는지를 묻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십니다. 세금을 내라는 말이 아니라 그걸 묻고 있는 '너'가 누구의 것이냐 묻고 계신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죽일까 말까를 묻는 이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눈 앞에 있는 여인을 처리하는 문제보다 더 높은 가치인 '우리의 죄인 됨'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우상의 재물을 먹어도 되는지를 묻는 고린도인들에게 바울은 먹어라 말아라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마음껏 먹어라, 그런데 누군가 실족한다면 먹지 말아라." 먹는 것보다 더 높은 기준인 형제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준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그 기준에서 반대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계 없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돈으로 자유롭게 사는 방법은 돈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함에 처할 줄도 알고 부유함에 처할 줄도 아는 것입니다. 무언가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그것을 피하는 것은 오히려 그 조건에 묶이는 것이지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빛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빛을 비추는 방법은 세상의 기준에서 더 선한 행동을 하거나 능력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면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돈이 있을 수도 있고 때론 가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자유롭기에 부러워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가치가 무엇인지를 하나의 정답처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세상이 말하는 yes or no로 규정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히11:38)'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며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의 기준 아래 놓으려고 우리를 속입니다.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옳은지 그른지를 먼저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지 못하게 하고 그 순서가 맞는지 아닌지를 다투게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힘만으로는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빛의 자녀들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가 '세상의 빛'이고(요9:5) 우리는 주 안에 있을 때 '빛'이기 때문입니다(엡5:9).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빛이 우리 가운데 계실 때 뿐입니다. 그가 계시지 않는 어둠이 다가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어드는 자가 되지 말고 그 어둠을 참된 빛이신 예수 앞에 꺼내놓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엡5:11). 그 빛으로 우리의 마음 속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이 강요하는 기준에서 한 걸음 떨어져 더 높은 하늘의 가치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구하는 우리들이 됩시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나를 정의하는 '세상의 가이드라인'은 무엇이며, 그로부터 어떻게 '관계없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Q2. 최근 내 삶에서 '예/아니오' 혹은 '맞다/틀리다'의 논쟁 뒤에 숨겨진 '더 높은 가치'를 발견한 적이 있나요?
Q3.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세상의 어둠을 빛 가운데로 꺼내놓아야 할 구체적인 영역은 어디일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빛으로 부르신
https://youtu.be/ZS5YUgxBu9Q?si=8tIjimGg08gGaS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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