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은 말씀
이사야 58:1-9a / 마태복음 5:13-20 / 고린도전서 2:1-12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이사야서에는 금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위선적인 신앙을 지적하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은 무엇이 공의로운 판단인지를 하나님께 묻기를 즐거워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즐거워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길을 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을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 위선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언뜻 듣기에 오늘날 교회에서 강조하는 대부분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이스라엘의 모습에는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마태복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며 어릴적 부터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신약학자인 권연경 교수는 그의 논문을 통해서 이 본문은 소금이 되라는 명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금인 이들을 향한 경고라고 말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밖에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어서 따라오는 비유의 마지막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경고와 공명합니다. 우리는 짜지 않은 소금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비추지 않는 빛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불가능한 이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은 비유까지 써가면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대로 일점 일획을 빼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금이 꼭 짜야해?', '빛이 꼭 어딜 비춰야해?' 그렇게 짜지 않으면서 소금인 척, 말 아래 있으면서 빛인 척 살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짠맛이 빠진 소금은 소금이 아니고, 비추지 않는 빛은 빛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와는 관계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난 소금이야', '그래도 난 빛이야' 생각한다고 해서 짜지 않은 것을 소금이라 할 수 없고 비추지 않는 것을 빛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무엇을 빼버렸을까요? 그들은 금식을 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찾고 있지만 그 안에는 '선택하심'이 빠져 있습니다. 이사야 말씀에서 금식을 말할 때 '기뻐하시는'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더 직관적인 의미는 '선택하신'입니다. 다시 말해 이사야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금식(fast that I choose)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호하다'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으나 이 단어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택하셨다'고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금식을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택한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은 금식'.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들끼리 잘 살라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열방을 위해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금식을 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지만 정작 그 안에 그들을 '선택하신' 의미가 빠져 있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뻐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만으로 괜찮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와의 교제, 목사님의 말씀, 하나님을 향한 은혜로운 예배. 그냥 그렇게 우리로서 괜찮은 채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택하신' 금식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우리로서 괜찮길 바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풀어주어야 할 억눌린 자들, 옷 입혀줘야 할 헐벗은 자들, 우리가 그 책임을 피하지 말아야 할 우리의 친척들... 이것이 빠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로 소금과 빛이 되게 하신 이유이자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본질은 지금 잠깐 뺐다 나중에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짠 맛을 잃은 소금은 다시 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판에 새기신 새 율법에서 점 하나, 획 하나를 빼고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보통 우리는 다른 이들의 상황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기에 우리는 무관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아시는 성령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만으로 만족하지 않게,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오늘 내가 만나는 이들이 당하는 압제와 결박과 굶주림을 위해서 기도하고 손 내밀 수 있게 말입니다. 이런 관심이 없는데도 우리의 신앙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것이 바로 맛을 잃어버린 소금의 상태가 아닐까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나의 신앙생활은 내 만족 만으로 괜찮은 채 사는 신앙이 아닌가 점검해봅시다.
Q2. 내가 버려서는 안되는 '짠 맛'은 무엇인가요?
Q3. 무관심을 이기기 위해 우리는 성령님께 무엇을 구해야할지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생각해봅시다.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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