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는 재판장(260111)

2026. 1. 17. 11:58·주일말씀나눔

함께 읽은 말씀
이사야 42장 1-9절 / 마태복음 3장 13-17절 / 사도행전 10장 34-43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몇일 전 우리 동네에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뉴스에 여러가지 사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나가던 20대 남성이 떨어지는 간판에 깔려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집 가까운 곳이라 유심히 봤더니 제가 머리를 깎으러 다니는 이발소였습니다. 안 그래도 평소에 다니면서 건물에 비해서 간판이 과하게 크다는 생각이 있었고 건물이 낡았다는 느낌이 있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피해자에게도 가게 사장님에게도 참으로 갑작스러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정의로운' 후속 조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고인과 유가족에게도 충분한 위로와 합당한 보상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다만 이 사고에서 피해자 만큼이나 당혹스러울 이발소 사장님에게도 이 일이 너무 가혹하게 지나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메시야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 예언하는 구절에서 그가 공의를 베풀 것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이런 예언자의 표현은 이스라엘의 험난했던 민족사와 연관되면서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대적들을 쓸어버리고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것이다'라는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예수는 가짜 메시아로 십자가에 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가 말하는 주의 종이 공의를 세우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듣도록 거리에서 그 공의를 선포해야 할 것 같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라고 그 근원을 제거해서 공의를 세워야 할 것 같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공의를 세운 권세는 시간이 지나 쇠하고, 그것을 추구하던 이들도 낙담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세상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사42:2-4)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 하나님께서 드디어 예언되었던 당신의 메시야를 보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메시야의 이미지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공의'는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처럼 뜻밖의 '공의'를 마주합니다. 그가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하나님은 민족과 관계 없이 누구든 받아주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던 것들이 무너졌을 때, 그의 눈에는 정말 보여야 했던 진짜 '공의'가 보이게 됩니다. 여기서 서로 상충되는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신을 심판자(재판장)으로 선포하셨다고 말합니다. 재판장은 잘잘못을 가려내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고넬료를 바라보면서 그가 깨닫게 된 것은 그 재판관이 심판하는 재판관이기 전에 '죄를 사해주는' 재판장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벌하시는 방식으로 유대인들에게 임하리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공의가 죄를 사하시는 방식으로 이방인에게도 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어렵지 않게 '정의'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지만 그 정의가 때론 어떤 이에게 가혹하게 여겨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참된 정의는 무엇인가?" 이것은 인류의 풀리지 않는 고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죄인을 처벌하는 것만이 '정의'의 본질일까요? 성경에는 인간을 실수에서 건져주는 도피성 같은 제도들이 있고, 망가진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희년도 있습니다. 떠나갔던 탕자는 돌아와 아버지 품에 안겼고,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은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범죄를 방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처벌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이방인은 자신들을 침략한 원수였겠으나 하나님의 공의는 그들도 당신의 자녀로 품어 안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을 의인되게 하는 공의' 입니다.

 

예수님은 '의'를 이루기 위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가 이루려 했던 '공의'는 잘못한 자를 처벌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스스로 그 죄를 감당하시고 죄인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기에 비로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례는 우리가 받는 세례와 연결됩니다. 우리 역시 세례를 받을 때 그와 함께 '공의'를 세우는 이들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때론 하나님의 정의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습니다. 오늘 나는 그 공의를 나의 앞마당에만 가둬두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봅시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이사야에는 ‘공의’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사야가 묘사하는 메시야의 모습을 보면서 ‘공의’의 의미를 묵상해봅시다.

Q2.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내가 받은 세례와 다른가요?  


Q3. 고넬료 사건의 의미를 살펴보고 예수님이 이루시려 한 ‘의’와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Jesus Messiah - Chris tom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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