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를 타는 용기(251228)

2026. 1. 3. 17:06·주일말씀나눔

함께 읽은 말씀
이사야 63장 7-9절 / 마태복음 2장 13-23절 / 히브리서 2장 10-18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유투브에서 '롤러코스터 설계자'를 검색하면 영상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롤러코스터 설계한 사람이 정장을 입고 무서운 롤러코스터를 함박 웃음을 지으며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평온하게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굉장히 이질적인 그 모습에 관심이 폭발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혹시라도 모를 위험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 같은 것은 없어보였습니다. 설계자로서 그만큼 이 놀이기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말씀은 예수께서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 하던 우리들을 해방시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묶이게 된 이유가 바로 '죽음의 공포'에 기인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살아갑니다. 가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수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포기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신'이라는 존재는 부차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모든 시간과 노력을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합니다. 그것이 먼저 해결되어야 다른 것도 돌아볼 여유가 생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공포'가 만들어 내는 허상입니다. 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 삶의 빈틈을 파고드는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고 할 때, 그가 오신 세상은 이렇게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 뒤이어 헤롯왕이 그를 죽이려 했었던 사건을 적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는 그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갔고 자기를 죽이려던 자가 죽기까지 그곳에서 피해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어린 아이의 몸으로 그 죽음의 두려움을 겪어내셨습니다. 그가 구원자가 되신 방법이 바로 우리의 고난을 함께 당하시는 것이었습니다.(사63:8-9) 하지만 그가 죽음의 세상으로 들어오셨다는 것, 그가 죽음의 위협을 겪으셨다는 것은 그저 그것을 경험했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구원의 창시자가 고난을 통해 완전해진다(히2:10)"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칫 예수님이 고난을 경험해서 참된 신이 되었다거나, 인간의 고난을 모르다가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완전해지셨다는 것은 마치 자격을 갖춘 의사가 수술방에 들어가서 수술을 집도할 때 비로소 온전한 의사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자격을 갖추고 있더라도, 능력이 있더라도 그것이 발휘될 현장 또는 대상과 멀어져 있다면 그것은 완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창시자는 죽음의 세상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술방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그저 이해하기 위해서, 공감하기 위해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창시자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완전하게 기능하기 위해서 구원의 대상, 거룩해져야 할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죽음을 겪으셨고 그렇게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던 마귀를 멸하셨습니다.(히2:14)

 

하지만 사실 마귀는 직접적으로 죽음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마10:29) 그렇다면 마귀가 죽음의 힘을 가졌다는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그가 우리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죽음의 공포'로 우리를 속이며 조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창세기 이야기에서 진짜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뱀이 마치 자기가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것처럼 하와를 속였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죽음의 공포를 스스로 감당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를 믿는 우리들도 '죽음의 공포'를 벗어던질 수 있습니다. 죽지 않으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참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죽음의 공포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매 순간 그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그것이 해결되어야만 다른 것들이 의미있어지는 것처럼.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 봤던 롤러코스터의 설계자처럼 우리 옆에 앉아서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 이거 내가 만들었어. 너 내가 타는 거 봤잖아.너 안 죽어."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된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음 너머 부활을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일을 살게 합니다. 우리의 2026년이 그렇게 생명 가득한 한해가 되어지길 기도합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죽음’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Q2. 죽음의 공포를 넘어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봅시다.


Q3. 예수님은 어떻게 오늘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시나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다리놓는사람들)

 

 

A.I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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