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은 말씀
호세아 6장 1-6절/마태복음 9장 18-26절/로마서 4장 13-25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야이로의 딸과 혈루병 여인의 이야기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굉장히 축소된 형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생략들이 있지만 그 의미를 모두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의 맥락입니다. 우리가 흔히 복음서를 읽으면서 착각하는 것은 이 이야기 속에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믿음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대단하니 그 믿음을 본받자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물론 이것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복음서가 전하려 하는 일차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의 이 이야기가 위치하고 있는 맥락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새로운 시대를 담은 새로운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앞서 마태복음은 음식 먹는 문제와 금식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율법의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사건 뒤에 이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지켜오던 율법과 제사, 종교적 형식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은 맥락 위에서 야이로의 딸과 혈루병 여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아마 이 두 사람은 모두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은 죽은 시체였고, 다른 한 사람은 부정하게 여겨지는 병에 걸린 사람이었습니다. 율법대로라면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부정하다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종교적 편견/교리/신념이 막아섰던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잃어버린 율법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신 것입니다. 복음서는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새 술을 담는 새로운 부대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은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라는 호세아서 6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의 이 말씀은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을 알자고 말하는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여기서 두가지 비유가 서로 대비되고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에 비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사랑을 아침 안개와 사라지는 이슬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아닌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아침 안개처럼 연약한 우리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잃어버린 율법은 스스로 하나님 알기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율법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보다는 그 율법을 지켰음을 자기 자랑으로 여기면서 스스로의 연약함을 망각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 율법보다 먼저 나타난 믿음에 의해 주어졌음을 논증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표현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 약속이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신다는 표현입니다. (율법이 아닌 믿음이라면) 율법으로는 안되고 믿음으로만 된다고 해야할 텐데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주어진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율법의 대체제가 아닙니다. 율법과 믿음, 둘 중에 선택해야 하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율법보다 먼저 있는 것, 율법보다 위에 있는 것, 율법마저도 마땅히 그 위에 서 있어야 했던 근거로서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응당 믿음 위에 서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된 것입니다. 믿음은 또다른 조건이 아닙니다. ‘조건 없음’, ‘그 어떤 것도 자격이 될 수 없음’이라는 전적인 은혜의 고백이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믿음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믿음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만 유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도리어 내게 자격이 없음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이 아침 안개와 같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의 사랑 없이는, 그의 자비 없이는 어떤 신학, 교리, 신념도 또 다른 율법, 또 다른 희생제사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사회운동가가 되어 무언가를 만들고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물이 흘러가기 위해서 통로에 쌓인 퇴적물을 치우듯이 그 사랑이 흘러가는 것을 막고 있는 자존심, 편견, 낯가림과 무관심과 같은 장벽들을 치우고 부수는 내적 갱신의 작업입니다. 오늘 내 삶에 그 사랑을 멈춰서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나를 비워내고 새로운 술을 채워낼 새로운 부대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은혜를 기억하기보다, 규칙을 지킨 것을 '내 자랑'으로 삼았던 경험이 있나요?
Q2. 나의 무력함과 자격 없음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고백해 본 적이 있나요?
Q3. 오늘 내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것을 막고 있는 가장 큰 장벽(자존심, 편견, 무관심 등)은 무엇인가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믿음으로 살겠네(손경민)
https://www.youtube.com/watch?v=un1RaU0J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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