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없는 사랑(260830)

2026. 9. 5. 20:24·주일말씀나눔

함께 읽은 말씀
예레미야 15장 15-21절 / 마태복음 16장 21-28절 / 로마서 12장 9-21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셨던 예수님은 이어서 자신이 어떤 일들을 당해야만 하는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메시야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방금 전에 예수님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승에게 대듭니다. 사실 당시 사람들에게 메시아는 로마의 압제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줄 해방자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시니 베드로는 메시아가 해야할 일과 맞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지요. 그런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탄이라며 비난하십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이해했을수는 있지만 예수님은 왜 그것을 ‘사람의 일’이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이 대화의 핵심은 그 다음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신 후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마16:2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스승의 운명은 곧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운명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는 것은 자기도 똑같이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의미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이 문제는 메시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목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신학적 문제인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사람의 일, 자기 안위에 대한 일을 마치 하나님의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예레미야에게서도 우리는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한탄합니다. 자신을 왜 고난당하게 두시는지, 왜 하나님은 자신에게 믿을 수 없는 존재처럼 행동하시는지를 묻습니다. 예레미야는 수많은 이들의 조롱과 무시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로 살아왔습니다. 그의 말처럼 하나님이 채우시는 분노를 안은 채 주님 손에 붙들려 외롭게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자리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탄하는 예레미야의 기도 앞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의외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예레미야가 돌아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그들이 너에게 돌아와야지 니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된다고도 말씀하십니다(렘15:19).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 모든 고난을 감내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사람은 예레미야 자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칫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도 하나님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이고, 내가 교회에서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도 다 주님을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왜 내 삶에는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느냐고 불평불만합니다. 마치 탕자의 비유에서 나는 아버지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는데 나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첫째아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돌아온 둘째 아들과 달리 정작 그는 마지막까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진짜 탕자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드려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대 정령신앙의 잔재입니다. 영적인 존재를 믿거나 그에게 협력하면 그 영적인 존재가 힘이 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언가가 부족하신 분이 아니고 우리를 통해 이득을 보시는 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고난 받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하신 방법이기 때문입니다(롬12:21). 승리하신 그분과 함께 우리도 승리하기 위해서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승리의 길로 초대해주시에 우리는 오늘도 나의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걸어갑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교회를 향해 많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 권면들을 읽고 있자면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다 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첫문장에서 바울은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롬12:9)’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거짓 없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도 거짓이 없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핑계 뒤에서 마음에 분노와 불만을 품고 숨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왜 사랑하고, 왜 희생하며, 왜 찬송합니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 거짓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의 수많은 권면 중 하나라도 오늘 나를 초대하시는 승리의 길로 여기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실은 내 안위를 지키려 했던 적이 있습니까?



Q2. 고난을 ‘하나님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는 길’로 본다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Q3. 로마서 12장의 권면 중 지금 예수님과 함께 실천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주님을 따르리(주찬양 선교단)

https://www.youtube.com/watch?v=6DAQNlDqf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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