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은 말씀
창세기 22장 10-19절 / 마태복음 13장 24-30절 / 로마서 8장 12-25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앞서 세례요한의 선포(마3:12)와 연결되는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 다 알곡과 가라지(쭉정이)를 구분하실 때를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알곡과 가라지로 비유되는 의인과 악인이 섞여 있는 현실을 전제합니다. 의인과 악인이 섞여있는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올바르게 판단하실 것이라 말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행하심을 설명하는 방법은 서로 다릅니다.
세례요한의 기준은 ‘회개의 열매’입니다. 열매를 맺으면 알곡, 못 맺으면 쭉정이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이 기준은 당혹스럽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모범적인 종교인으로 여겨지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 비판하는 맥락 가운데 이 선포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에는 ‘열매를 맺으라’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뿌린 사람이 누구인가’ 입니다. 주인이 뿌렸으면 알곡이고, 원수가 뿌렸으면 가라지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주인이 알곡과 가리지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당장 가라지를 거둬내지 않는 이유는 가라지를 거두다 알곡이 다칠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추수 때가 되면 주인은 원수가 뿌린 가라지를 거둬내고 자신이 뿌린 알곡을 모아 창고에 들일 것입니다.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내가 누구에게 속했는가’ 하는 것 뿐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은 이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는 이미 자녀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장자권이라는 것을 얻으려고 형과 아버지를 속이며 축복을 가로채려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장자권이 더 나은 축복으로 작용했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담의 복을 물려받은 것도 셋째 아들인 셋이었고, 아브라함의 복을 이어받은 이삭도 사실상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이후 야곱의 열두아들 가운데 실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것은 거의 막내나 다름 없던 요셉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실 장자권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법칙이기보다는 당시의 사회적 통념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나타나는 야곱의 모습은 결코 축복받은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형을 피해 쫓겨난 그를 보면서 당시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마치 쫓겨나 광야를 헤매던 하갈에게 찾아오셨던 것처럼 아무 의지할 곳 없는 그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가 장자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계십니다. 그가 본 하늘의 사닥다리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사닥다리가 아닙니다. 하늘에서 땅을 향해 찾아오신 사닥다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하늘이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바로 여기가 하나님의 집(벧엘)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아빠, 아버지”라는 표현을 가져와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표현으로 사용합니다. 이 표현을 통해 본래 자녀일 수 없던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을 약속하는지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그 축복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롬4:13). 알곡과 가라지 중에 알곡으로 구분되는 기준이 열매맺음보다 누가 뿌렸는지에 달렸던 것처럼 ‘상속자’가 되는 방법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롬8:17). 야곱은 자신이 가진 상속자라는 신분을 너무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순간 그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참된 축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승우는 자신의 책 [고요한 읽기]에서 존재는 인식에 우선한다고 말합니다. 야곱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그를 지키셨듯이 그가 깨닫지 못했다고 해도 그는 상속을 받는 자녀였던 것입니다. 주인이 자신이 뿌린 알곡을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자녀임을 성령을 통해 증거하십니다.(롬8:16)
바울은 우리가 자녀이며 또한 상속자임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피조물이 우리의 나타남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 속에서 허무에 굴복해 신음하고 있는 피조물의 고통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로서 서게 될 우리에게 어울리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에서 할아버지 진양철 회장의 도자기를 깨먹은 손주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때 할아버지는 손주가 도자기를 깬 것을 탓하기보다 그가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답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잘못이라 말해줍니다. 오늘 우리는 야곱처럼 우리가 자녀이며 상속자라는 사실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인 건 알겠는데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상속받는지도 모른채 그저 나의 삶, 나의 환경, 나의 앞날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를 상속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상속자답게 내가 상속받을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야곱처럼 이미 가진 축복보다 더 큰 것을 붙잡으려 했던 경험이 있나요?
Q2. 요즘 내가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상속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Q3. 이번 한 주 동안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실천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부른 찬양
주님 주신 삶(최인혁)
https://www.youtube.com/watch?v=hH3_eE81d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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