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은 말씀
출애굽기 33장 1-6절
요한복음 11장 1-6절
빌립보서 3장 17절-4장 1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금송아지 사건이 벌어진 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시내산을 떠나라고 하시면서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친히 가리라(14절)’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이것은 이스라엘을 포기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거리를 두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7절부터 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회막’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흔히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거리감을 내포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에 있다’는 말처럼 하나님은 인간과는 다른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분의 영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거리두기를 하시는 것일까요?
이런 거리두기의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도 나타납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그에게 바로 가지 않고 이틀을 더 지체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에 2일이라는 시간적 거리두기가 생깁니다. 당연히 나사로는 그 사이에 죽었습니다. 그가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 왜 예수님은 바로 가지 않으셨을까요?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영광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이 영광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나사로를 죽이는 거리두기를 하신 것일까요? 하지만 여기에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이틀을 지체했다는 기록보다 앞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그의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요한복음 11:5)
예수님의 거리두기가 바로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와 거리두기를 하시는가? 이 질문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 즉, 하나님이 우리와 다른 존재라는 것 때문에 그 원인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거리두기가 본질적으로 그분의 사랑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도, 자신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때문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출33:3).
우리는 거리감이라고 하면 멀어지는 것, 소외되는 것, 눈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정반대의 의미로 이 거리감을 사용합니다. 그는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에게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말합니다. 땅에 살지만 나는 하늘 백성입니다. 이 거리감은 우리가 하늘에서 버림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오늘을 살지만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이 거리감도 기다리는 만큼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는 소망의 크기이고, 비천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기쁨의 크기입니다(빌3:21). 그리스도인은 이 거리감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떨어질 때 생기는 힘을 위치 에너지라고 부릅니다. 이 위치 에너지는 그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커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생겨나는 영광의 거리감은 곧 우리의 변화로 얻게 될 에너지의 크기입니다. 그 거리감이 클수록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과 가까워지는 만큼, 더 많이 용서받는 만큼 그 에너지는 더 크게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과 멀어진 것 같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나를 변화시키실 능력으로, 우리를 살리실 사랑으로 치환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늘로부터 땅의 거리를 증명하신 생명의 거리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거리감만큼 더 큰 에너지로 우리를 변화시키실 줄 믿습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하나님과 거리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나요? 그 거리감은 나의 인생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생각해봅시다.
Q2. 예수님이 나사로를 고치러 바로 가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뭐라고 하나요?(요11:5)
Q3. 그리스도인은 거리감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빌3:21)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듣는 찬양
섬김 - 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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