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은 말씀
여호수아 10장 16-27절
요한복음 20장 1-18절
요한계시록 12장 1-12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물음입니다. 과거가 그냥 지나간 시간으로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내고 극복하며 구원하게 하는 기억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주께서 부활하셨다고 고백하는 이 아침 우리는 그녀의 물음을 우리 삶으로 가져옵니다. 우리는 자칫 부활절을 이야기하면서 부활 이전의 상태를 마치 ‘없었던 일’ 취급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해방된 삶은 언제나 과거 앞에 당당할까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상태로부터 구원받았는지 잊어버린다면 우린 언제든 다시 과거에게 삼켜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은 수제자인 베드로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마치 부활을 먼저 목격하려고 경쟁하는 것처럼 그려내고 있습니다.(4-8절) 하지만 그들은 부활을 맞이하려 무덤으로 달려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침 무덤을 찾은 이들이 마주하게 된 것은 부활의 영광, 승리의 함성이 아니라 스승의 시신이 도난당한 현장이었습니다. 무덤 문이 열려진 현장에서 마리아는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녀는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제자들은 죽은 스승의 시신마저 사라진 이 절망적인 상황을 마주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10절) 하지만 마리아는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이란 단순히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은 그냥 십자가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셨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냥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내려오셨으면 더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냥 그 무덤 속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부활은 소위 ‘짜잔’하며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아모리의 다섯 왕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나무에 매달리고 굴에 장사됩니다.(26-27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점만 빼면 모든 상황이 비슷합니다. 여호수아가 돌로 굴 입구를 막았을 때 그들이 경험한 것은 죽음, 가망 없음, 도망갈 곳 없는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셨던 시간 역시 죽음, 가망 없음, 도망갈 곳 없음의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경험하는 자리는 모든 것이 끝장난 것 같은 자리, 나에게 희망은 없을 것 같았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만 부활은 부활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절망의 자리를 떠나갈 때 부활은 교리적인 선언이 될 뿐 어떤 생명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이 아니라 부활한 자가 극복한 죽음입니다. 부활의 아침 우리는 과거를 마치 오늘의 이야기인 것처럼 기억해야 합니다. 그 과거가 오늘 우리의 구원을 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활은 끊임없이 무덤 앞에 머물러 그 의미를 기억할 때만이 참된 구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시간이 영원할 수 없고 마침내 이길 것임을 증거하는 증인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1260일이라는 숫자가 등장합니다. 이 숫자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한 때, 두 때 그리고 반 때’ 또는 ‘마흔 두달’이라는 숫자로 표현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이방인들이 거룩한 도성을 짓밟는 기간이고(계11:2-3),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는 기간이며(계12:6, 14), 짐승이 권세를 받는 기간입니다(계13:2). 이것은 구원받기 전 우리가 마주했던 죽음이고, 오늘도 우리가 마주하며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그것을 ‘3년 반’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영원을 의미하는 완전수 ‘7년’의 절반으로 ‘하나님에 의해 제한되는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끝내고 마침내 이기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아모리의 다섯왕의 그것처럼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그 무덤은 비었고 그 안에 계셨던 분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동굴이 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 과거는 오늘도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원한 것처럼 말입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우리는 부활절이 되면 어떤 생각들을 하나요? 그게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Q2. 빈 무덤 앞에서 베드로와 마리아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Q3. 구원받기 이전 나의 삶은 어땠었는지 생각해보고,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지 나눠봅시다.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듣는 찬양
무덤에 머물러 - 새찬송가 16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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