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은 말씀
이사야 65장 1-9절
누가복음 9장 37-43절
갈라디아서 3장 23-29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귀신들린 소녀를 고치시는 누가복음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삐뚤어진 세대”를 비판하십니다. 여기서 ‘세대’라는 표현은 앞서 7장의 이야기를 참고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7장에서 예수님은 이 ‘세대’를 장터에 앉아 있는 아이들로 비유해 말씀하십니다. 빵과 포도주를 먹지 않던 세례요한에게는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하던 이들이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먹자 ‘먹보에 술꾼’이라며 비난합니다. 먹어도 욕하고, 안 먹어도 욕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요한과 예수님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 모습이 귀신들린 아이의 사건 속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그들은 일면 정당해보이는 주장을 합니다. 고통받고 있는 아이를 고쳐야 한다고 말이지요. 사랑한다면 고쳐 주어야지요.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이지 예수님의 사역이 가진 본질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삼일만에 살아나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22절) 그리고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뒤에는 ‘사람들에게 넘겨질 것’에 대한 말씀하십니다.(44절) 사람들은 정작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시려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기 딸을 고쳐줄 수 있는지만 궁금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도구삼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 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비본질에 마음을 빼앗긴 세대를 비판하신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을 보여왔는지를 말씀하십니다.(1절)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도 우상을 숭배하면서 오히려 다른 이들을 멸시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우상 숭배에서 돌아오길 바라셨지만, 그들은 내 옆에 있는 더 ‘나쁜’ 사람들만 본 것이지요. 이것은 세리를 바라보며 그와 ‘같지 않음을 감사한다’고 기도했던 바리새인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눅18:11) 이스라엘의 이런 태도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런 위선적인 태도는 그 사랑을 진노로 바꿀 뿐인 비본질이었습니다.
우리는 요즘 누군가의 개인적 신념이나 정치적 의견이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서로 적이 되고 악마화하는 것이 너무 흔해진 시대입니다. 하지만 본질을 전하기 위해서는 비본질을 걷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우리가 모두 죄인일 뿐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고백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다른 사람보다 더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지요. 하지만 은혜에 관한 이 고백은 우리가 다른 이를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가치들은 의미없는 비본질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율법을 문제시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율법 뒤에 숨어서 이방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정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비본질적인 할례를 강요하면서 복음의 본질을 짓밟았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막아서는 커다란 벽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율법이 한시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오면 이런 율법의 역할이 중단될 것입니다. 그것이 비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사람을 정죄하던 시대가 끝나고 ‘믿음’ 앞에 모든 차별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국 초창기 교회들을 보면 ㄱ자 모양으로 된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해서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입구를 통해 들어와서 가운데 커튼을 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서 더 평등한 건축을 할 수 있었을텐데 왜 그랬을까요?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가진 서양적 사고와 문화를 강요하는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우리나라의 문화와 상황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본질을 지켜가고 있나요? 내 이웃을 향한 그 사랑만 우리에게 남길 기도합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막아서는 것은 무엇인가요?
Q2. 예수님이 이 '세대'를 탓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Q3. 바울이 말하는 믿음에 대한 말들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생각해봅시다.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듣는 찬양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 어노인팅
https://www.youtube.com/watch?v=6NwlcOdaT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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