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은 말씀
예레미야 29장 1-7절
누가복음 17장 11-19절
디모데후서 2장 8-13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최근 넷플릭스에 새로 공개된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는 우리가 잘 아는 램프의 정령 지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디즈니 원작과 다른 점이라면 지니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유가 그들의 타락을 증명하고 파멸로 이끌기 위함이라는 것이었지요. 소원의 기회를 얻은 사람들은 그런 지니의 의중을 알지 못한 채 하나같이 자신의 욕망을 따라 소원을 빌었고 결국 그것은 자멸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작품은 ‘의로운 소원’은 무엇이고 그것을 욕망하는 ‘인간’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무릇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29장에서는 일반적인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을 잃은 실의와 포로로 살아야 하는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들은 회복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정착해 살고 그 성읍이 번영하도록 기도하(29:5-7)라 하십니다. 오히려 곧 회복되리라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들을 멀리하(29:8-9)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얼마나 황당하고 낙망했을까요. 그들의 소원은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누가복음 17장에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접경 지역에서 예수님이 만난 10명의 나병 환자가 등장합니다. 모두 병이 낫기를 그분께 간구했고 기도를 들어주시어 바로 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병이 나은 것을 알고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한 건 사마리아인 단 한 명 뿐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구원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열 명 중 아홉은 병 고침을 받았지만 구원의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구원으로 가는 과정의 하나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이었지 예수님이 그들을 만나신 진짜 목적은 병 고침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와 누가복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기도를 돌아봅니다. 멸망하였으나 다시 이스라엘을 일으키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우리의 병을 낫게 하실 예수님의 기적을 원하는 것이 정말 잘못인가요? 그렇지 않지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만 바랄 뿐, 정작 모든 역사와 병마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쉽게 범하는 잘못입니다. 우리의 기도에도 ‘의로운 소원’인체 하는 ‘욕망’을 끼워넣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의 신앙은 기도 응답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니가 아니니까요. 우리의 욕망은 그분의 목적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서 바울은 매여 있는 자신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있지 않(2:9)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2:13)고 고백합니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우리의 생사화복이 원하는 방식과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오히려 그럴 때 더욱,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내 삶이 망가져 나를 신뢰할 수 없는 그 순간에도 그 분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간구보다는 감사기도로 향기의 제사를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그 땅에 정착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렸을까요?
Q2. 나병환자 열 사람 중에 돌아온 한 사람은 나머지 사람들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Q3. 바울이 매인 중에도 헌신과 약속에 대해서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듣는 찬양
감사 위에 감사 - 투미니스트리(Ori. 민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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