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은 말씀
이사야 1장 1-9절
요한복음 8장 39-47절
고린도전서 5장 9-13절
우리집교회의 예배는 한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들은 모두 어떤 특정한 관계와 자격에 관계가 있습니다. 이사야서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녀’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앞으로 이어질 모든 예언들은 바로 ‘자녀’인 이스라엘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자녀’인 이스라엘이 죄를 짓는 것에 대해서 아파하고 안타까워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특정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나 범죄가 아니라 바로 ‘자녀’의 타락과 범죄 그리고 그에 따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무너지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 관계 때문에,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이 모든 관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그의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는 말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이들에 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자녀이기에 하나님은 이 관계를 바로 잡으려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관계의 거절, 왜곡, 파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사야 1장 5절의 “어찌하여 너희는 더 맞을 일만 하느냐? 어찌하여 여전히 배반을 일삼느냐?”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하나님의 심정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저는 사춘기 아들을 가진 부모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특별히 아들인 저의 경험에 비춰보면, 육체적으로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힘으로 부모님을 이길 수 있을 때쯤 부모의 잔소리가 우스워지면서 비로소 사춘기가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힘으로 날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부강해지면서 이제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어찌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업신여긴다(4절)’라고 짚었습니다. 부모를 업신여기는 마음이 부자지간의 붕괴를 가져온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문제를 정반대의 방향으로 다룹니다. 자녀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등을 돌리는 현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본질을 문제삼으십니다. 즉, “자녀는 맞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본질은 악마의 자녀라고 꼬집으십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왜곡되다 못해 이제는 완전히 다른 부모와의 관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는 마음(요8:44)”입니다. 악마의 욕망대로 하려는 행동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악마임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태도는 결국 다른 부모의 욕망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녀됨의 본질이 ‘부모의 욕망을 따라가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욕망하는 것을 따라 갑니다. 그 욕망은 부모라는 대상에 대한 순종과 존경 그리고 경외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42절).”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악마의 욕망대로 하기를 욕망하는 자가 악마의 자녀인 것처럼 말이지요. ‘사랑’이란 ‘욕망’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합니다. 진리와 구원,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그분의 소망을 욕망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분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욕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욕망해야 합니다. ‘사랑했었다’가 아니라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욕망하듯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욕망하지 않을 때 그것은 다른 부모를 따르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그분을 사랑하지 않았던 이스라엘과 같은 상태를 우리 가운데서 쫓아버려야 합니다(고전5:13). 이것은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더욱 사랑하지 않으면, 욕망하지 않으면 언젠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의 부모가 누구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을 욕망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도 좋지만 더 추구하고 소망하며 갈망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Q1. 자녀의 불효와 망가짐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요?
Q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무엇을 욕망하고 있나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질문 등을 남겨주시면 답해드립니다.
함께 듣는 찬양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찬송가 314장)
'주일말씀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리, 새예루살렘(251123) (0) | 2025.11.29 |
|---|---|
| 흐릿함을 감내할 이유(251116) (0) | 2025.11.22 |
| 그 분의 뜻에 머물러(251026) (0) | 2025.10.31 |
|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하나(251012) (1) | 2025.10.18 |
| 모순과 역설(250928) (0) | 2025.10.04 |